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30년대 후반 전남 광주(光州)와 서울 등지에서 신사상에 입각하여 적색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염규석은 1930년 3월 복내공립보통학교를 졸업, 4월 고창사립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32년 3월 퇴학하고, 광주에서 장유(醬油) 제조업을 하였으나 실패하자, 1937년 3월경부터 김한동(金漢東)이 경영하고 있는 사진관에서 기술 견습을 하였다. 이때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본격적으로 신사상 운동에 참여하여 비밀결사 프롤레타리아 문예 서클, 사회과학연구회, 독서회 등을 조직하고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4월경 동지들과 ‘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가두부(街頭部)·공장부(工場部)·운수부문부(運輸部門部) 등 3개의 부서를 두었고, 염규석은 공장부를 맡았다. 동지를 규합하여 산업별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들을 통솔하여 중앙노동조합을 조직할 것 등 세부적인 운동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에 염규석은 실천투쟁을 벌이기 위해 용산 동아공업주식회사(東亞工業株式會社) 슬레이트 공장의 직공으로 들어갔다. 1937년 5월 하순부터 노동조합의 결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경찰의 감시망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당하였다.
염규석은 1939년 11월 1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사건(思想彙報, 고등법원검사국사상부, 1939. 12) 제21호, 245~250면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39. 11. 14)
- 豫審終結決定書(光州地方法院 豫審掛:1939.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