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경상북도 (慶尙北道) 간부 정학선 (鄭學先) 의 감화를 받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신봉하기 시작하여 1926년 11월 중순경 정학선 (鄭學先) 의 지시에 따라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에 입당하여 이상갑 (李尙甲) 등과 함께 포항 (浦項) 야체이카를 조직하고 1927년 8월경까지 수차례 야체이카회 (會) 를 개최하는 한편 1927년 7월 신간회 (新幹會) 영일지회 (迎日支會) 조사부원 (調査部員) 에 선임되어 민족협동전선운동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가 1931년경 체포되어 징역 8월(미결구류 (未決拘留) 120일 통산 (通算) )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0년대 중반 신사상운동에 입각하여 민족협동전선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하병조는 1926년 11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포항야체이카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7월 신간회(新幹會) 영일지회 조사부원에 선임되어 민족협동전선운동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1년경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하병조는 1931년 8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2월 7일 출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1. 8. 10, 12. 10)
- 朝鮮日報(1927. 7. 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 1931.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