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0년 음력 6월 대구에서 김석주(金錫柱)·장내주(張來周)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했다. 달성군(達城郡) 화원면(花園面) 등지에서 단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는 6월경 김석주와 장내주가 먼저 대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와 연락하기로 합의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일단 대구부와 달성군·고령군(高靈郡)을 활동구역으로 삼아 재산가나 지식인 중에 뜻이 굳고 입이 무거운 사람을 입회(入會)시켰다. 점차 활동의 범위를 확장하여 완전한 단체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후 김석주와 장내주는 6~11일 사이에 안수갑을 비롯한 6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각자 서약서와 약 50원을 징수하였다. 이보다 앞서 이들은 대구의 불교청년회(佛敎靑年會) 회장 백석기(白奭基)를 단장(團長)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당하였다. 또 겉으로는 회사를 설립해 경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이동옥(李東玉)에게 요리점을 차리게 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달성과 고령 방면으로 확장해서 활동하려다가 동지들과 함께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8월 24일 검찰로 송치되었다. 1921년 10월 14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10월 15일 형 집행 만기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21. 10. 14)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명적표(名籍表)
- 동아일보(東亞日報)(1920.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