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36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이재유 그룹’이 결성한 비밀결사 ‘조선공산당재건(朝鮮共産黨再建) 경성준비그룹’ 산하의 연구회(硏究會)에서 활동하였다. 이재유(李載裕) 등을 중심으로 한 ‘경성준비그룹’에서는 기관지 『적기(赤旗)』와 팸플릿 등을 발행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여 교육 훈련을 실시했다. 권헌상이 활동한 ‘연구회’는 ‘경성준비그룹’ 산하 ‘재동공립보통학교독서회(齋洞公立普通學校讀書會)’의 이종국(李鍾國)이 지도하고 있던 모임이었다. 12월 이래 이재유 등 조직원 다수가 검거되면서 ‘경성준비그룹’의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같은 달 1일 권헌상도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1937년 9월 초순경 서울 가회정(嘉會町)의 약수터 부근에서 이희철(李禧哲)를 만나 활동을 다시 재개하기로 뜻을 세웠다. 자금 5천 원을 조달하여 서울시내에 점포를 마련해 표면적으로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이면으로는 아지트로 삼아 기관지의 작성, 인쇄, 배포 등을 실행하기로 뜻을 모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원활히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1938년 4월 중순경 노동자 박병윤(朴炳允) 등과 함께 비밀결사 동일회(同一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이세린(李世獜)의 지도 아래 여러 차례 회합하여 자금 모집, 동지 규합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5월 5일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체포되었다. 12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9년 10월 28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38. 12. 9)
- 사진 :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