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윤명재는 1928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6월부터 9월까지 동아일보 공주지국 고용원으로 신문배달을 했다. 신문배달을 하며 동아일보 기자인 이용하(李鎔夏)와 친분을 맺고 사회과학 서적을 빌려 탐독하여 신사상운동에 심취하였다.
1932년 8월부터 친구 오수남(吳壽南), 김태헌(金泰憲), 박신득(朴信得), 임근호(林根澔) 등과 교유하면서 사유재산제도의 철폐와 신사회 건설을 역설하였으며, 1933년경부터 충남 공주군 공주읍에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연맹(文學聯盟) 계통의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중앙일보(1933. 6. 1)
- 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4. 3. 12)
- 東亞日報(1933. 5. 31, 1934. 1. 23, 1934. 1. 28, 1934.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