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남 언양(彦陽) 출신으로 1909년 의병장 박선익(朴善益)의 지휘 아래 김기준(金基俊) 등과 함께 경남 언양·울산(蔚山) 등지에서 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 재무서(財務署), 우편소(郵便所) 등을 공격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기준은 언양군 상북면(上北面) 남부리(南部里) 출신으로 의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활동하고 있었다. 1908년 6월 30일 김기준을 비롯한 의병 13명은 울산군 농소면 오정동에서 임달이(林達伊)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던 중, 울산경찰 분서에서 파견된 4명의 변장순사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김기준과 김치일이 체포되었다. 심문 결과 김기준의 지휘 아래 있던 의병들은 울산군 관내에서 11건의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소속된 의병은 김춘길(金春吉), 염덕로(廉德魯), 허익견(許益見), 박춘영(朴春永), 홍치언(洪致彦), 김치일(金致一), 박선일(朴善一), 송돌기(宋乭基), 박선익(朴善益) 등으로 밝혀졌다.
이돈성은 김기준 등 수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1908년 울산군 내사리 조봉면으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수집하였다. 그 외에도 1908년 3월 10일 울산군 내현면 봉월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 외에도 1908년 3월 19일 이돈성은 박선익·김기준 등과 함께 언양읍 순사주재소(巡査駐在所)·재무서(財務署)·우편소(郵便所) 등을 공격, 방화하였다. 이돈성은 1909년 5월 23일 언양 읍내에서 체포되어 울산경찰서에 인치되었다.
1909년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7월 17일 진주지방재판소 부산지부에서 교수형이 선고되었고, 이에 공소하여 1909년 9월 30일 대구공소원에서 종신징역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逮捕에 關한 件(1909. 6. 7)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判決文(大邱控訴院:1909.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