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대한제국 군인으로 군대해산 이후 의병에 가담하여 김태원의진에서 활약하였다.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침략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활동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행하였다. 김갑수는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당하자 의병에 투신하여 김태원 의진에 가담해 포수로 활약하였다. 김태원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최익현(崔益鉉)·이남규(李南珪) 등이 의병을 일으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고 있던 중 1907년 9월 성재(省齋) 기삼연(奇參衍)이 장성에서 거의하였다는 것을 알고 일가인 전 참봉 김돈(金焞)과 의논하고 의병을 규합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합류, 그 선봉장이 되었다. 동년 9월 9일에는 고창(高敞)의 일본군을 무찌르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김태원은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으며 일본군 천단(川端) 조장(曹長)을 비롯하여 길전승삼랑(吉田勝三郞)·철도삼전(鐵道三田)을 사살하는 등 전남일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김갑수는 1908년 4월 김태원과 함께 어등산전투에 참전하였으나, 의진이 패산한 후 각지를 전전하다가 1908년 6월 9일 광주군(光州郡) 마지면(馬池面) 마운촌(馬雲村)에서 일본순사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김갑수는 호송중 저항하였다는 이유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巡秘發 第237號(1908. 6. 9)
- 義重泰山(洪英基編著, 竹峰金泰元義兵將記念事業會,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