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화순 출신으로 양회일의진(梁會一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4월 말 양회일이 주도한 쌍산의소(雙山義所)는 능주(綾州)의 관아와 일본군 주재소를 습격하였고, 이어서 화순(和順)의 관아와 분파소를 습격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우선 광주(光州)를 공격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 나아가 북상하여 서울의 일본 세력과 친일파를 구축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쌍산의소의 의병들은 광주를 공격하기 위해 동복(同福)에서 진을 치고 있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았다. 이리하여 양회일을 비롯한 의병 6명이 체포되었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주기화는 1907년 초 전남 능주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차재문(車在文)과 함께 쌍산의소에 참여하여 양회일의 휘하에서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7년 음력 6월 경 양회일을 비롯한 6명이 체포되어, 동년 7월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가, 동년 12월 순종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 후 이백래의진(李伯來義陣)에 참가한 주기화는, 1908년 6월 16일 장흥헌병대(長興憲兵隊)를 습격하다가 체포되었는데, 혀를 끊어 자결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杏史實記(梁會龍, 1950) 卷4
- 綾州鄕校敬通(1946) 필사본
-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홍순권, 1994) 92면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연구(홍영기, 2004) 213~214면
- 臨戰日錄(李容植,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