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대동청년회는 1924년 10월경 길림성 안도현(安圖縣)에서 조직된 대동회(大同會)의 전신이다. 대동회는 연두익(延斗翼) 등이 대동청년회를 개편해 조직한 것으로, 총부(總部)를 액목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 두었다. 의열단(義烈團), 의용군사회(義勇軍事會), 광복단(光復團), 국민회(國民會), 독군부(督軍府) 등이 대동회에 참여했으며, 각 단체의 위원 합의제로 운영됐다.
대동청년회 소속으로 활동하던 차응호는 1924년 10월 18일 대동회원 이영숙(李永禧)의 지휘 아래 공정단원(公正團員) 조명선(趙明善), 적기단원(赤旗團員) 이용권(李龍權) 등과 연길현 수신사(守新社) 비암촌(飛岩村)을 찾았다. 이들은 이곳에 사는 유재홍(劉在洪) 외 재산가 7명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때 차응호 등은 대동회 임명장, 독립공채증권 및 선전문(宣傳文), 권총, 폭탄 등을 휴대하고 있었다.
차응호는 1925년 4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 및 1919년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천형무소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7년 2월 칙령 제12호에 의해 감형돼 1928년 12월 19일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25. 4. 22)
- 조선일보(朝鮮日報)(1925.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