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함남 북청(北靑) 사람이다.
의병으로 함남 일대에서 차도선(車道善)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차도순은 그의 형 차도선이 1907년 홍범도(洪範圖)와 의병을 일으키고, 북청(北靑)군의 태양욱(太陽郁)과 합세하여 의진을 정돈하자 이에 참여하여 함남 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차도선 의진은 1907년 11월 16일 먼저 안산면장 주도익(朱道翼)을 살해함으로써 의거의 기치를 높였다. 11월 22일에 후치령(厚峙嶺)에서 일 군경 수명을 사살하였으며, 다음날에는 북청에서 혜산진으로 향하는 신곡(新谷) 소위 이하 수비대를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11월 24일 북청수비대(北靑守備隊)는 궁부(宮部)대위 등 60명을 후치령 부근에 보냈으나, 25일 오후 차도선은 약 300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격전을 벌여 이를 물리쳤다. 12월 중순에는 북청 갑산의 장항리(獐項里) 부근에서 북청수비대(北靑守備隊)의 청지대위가 이끄는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12월 말에는 함흥, 혜산진, 갑산의 일군수비대가 연합하여 삼수(三水)에서 격전을 벌였으나, 약 3시간의 공방전 끝에 이를 물리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후 의진은 계속된 일본군과의 교전을 승리로 이끌다가, 1908년 3월 약 250여 명에 달하는 의병의 구명을 위하여 일시 해산하였고, 차도선은 거짓 귀순하였다가 동년 5월 7일 기회를 틈타 탈출하여 이리사를 거쳐 황수원(黃水院)에 이르러 홍범도(洪範圖)의병부대와 합류하여 다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차도순은 1908년 9월 북청헌병분견소(北靑憲兵分遣所)에 붙잡혀 동년 9월 15일 비밀리에 북청의 남문 밖에서 처형당하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관한 編冊(1908.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