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충남 부여에서 의병 지원활동을 하였다.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같은 시기에 한학삼은 자신이 거주하던 부여군 초림면(草林面) 세동리(細洞里)에 이장(里長)으로 있으면서, 평소 의병이 출현하면 바로 분파소(分派所)에 신고하라는 일본군의 요청이 있었으나, 오히려 마을 인근에 의병이 주둔하자 이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하였다.
1907년 12월 경 엽총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약 70∼80여 명의 의병이 동 마을 부근에 출현하자 평소 배일사상(排日思想)을 가지고 있었던 한학삼은 의병에게 군수품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통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 의병은 동년 12월 12일 세동리와 신송리(新松里) 경계에서 일본군 강경수비대(江景守備隊)와 약 1시간 여에 걸쳐 교전을 치렀고, 강경수비대는 동일 부여군 초림면 건평리(乾坪里)에서 숙영하였다. 이날 12일 늦은 밤 한학삼은 한기안(韓基安)·한사용(韓四用)·한성수(韓聖數) 등과 함께 등과 함께 일본군 수비대에 몰래 접근하다가 발각되어 검문 당하자 탈주를 시도하다가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에 관한 編冊(守備兵力 暴徒에 參與한 者 銃殺한 報告, 1907.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