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조금동은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일제의 민족차별 교육정책 철폐를 주장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 광주고등보통학교 동맹휴학은 1928년 6월에 시작되어 4개월간 전개되었는데 일제의 탄압으로 16명의 학생이 유기징역을 받았고 수많은 학생이 정학과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조금동은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 한인 노동자를 위한 항일운동에 종사하다가 1931년 1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에 가입하여 관동자유노조(關東自由勞組) 지포가두반(芝浦街頭班) 위원이 되었으며, 전협 토목건축 동경지부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 기간 조금동은 일전(日電)과 일금(日金) 서남지구 책임자 등을 거쳐 1934년 10월부터는 전협 재건운동에 종사하였다. 이같이 재일 한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1935년 3월 30일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다. 그해 12월 10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옥고를 치르고 1936년 말에 석방되었다.
출옥 이후에도 조금동은 노동운동에 관계하면서 구전협(舊全協) 쇄신동맹파(刷新同盟派)를 중심으로 일본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다가 1941년 2월 26일 다시 일제경찰에 검거되었다. 1944년 3월 23일 동경형사지방재판소(東京刑事地方裁判所)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고 복강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特高月報(內務省警保局保安課, 1936) 12면
- 特高月報(內務省警保局保安課, 1941. 2) 14면
- 特高月報(內務省警保局保安課, 1941.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권 525면
- 在日朝鮮人關係 資料集成(三一書房, 1975) 제3권 1456면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纂委員會, 1997) 3권 1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