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32년 11월 26일 서울의 극단 만경좌가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면(禮山面) 예산리(禮山里)에 와서 「동방의 빛」이라는 제목의 친일적인 연극을 상영한 데 대해 동지 김현창(金顯昶)과 함께 조직적으로 항의를 주도하였다. 이 연극은 1931년 9월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재만(在滿) 조선동포들이 마적(馬賊)에게 극도의 박해를 받고 살해당할 때 일본 군대가 와서 구원하고 보호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본 후 다음날인 11월 27일 저녁 이강오(李康午)의 집에 모인 강봉주(姜鳳柱)·김만복(金萬福)·이광섭(李光燮)·윤수덕(尹壽德)·이동순(李東順)·강찬희(姜瓚熙) 등에게 “「동방의 빛」은 한국인의 친일사상을 조장하고 민족의식을 소멸시키는 것으로서 우리의 주의 사상과는 상반되는 것이니 극단에 대해 엄중한 항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이들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 인근 김현상(金顯相)의 집에 투숙 중인 극단 간부를 호출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11월 28일 오후 4시경 김현창·강봉주 등 6명과 함께 김현상의 집으로 가서 극단 단원 이태홍(李泰洪) 등 4명을 면회하였다. 이들은 “무릇 한국인으로서 민족의식이 없는 자가 없는데, 이 연극에서는 일부러 우리 동포가 마적배(馬賊輩)에 박해당하고 살해당하게 되기까지 저항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본 군대에 의해 구호(救護)되는 듯한 장면이 있다. 이러한 것을 상연하는 것은 우리 조선 민족의 치욕이다. 우리가 지금 일본 지배하에 어떠한 권력도 주어지지 않아 불만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헛되이 대중으로 하여금 그 은혜와 강권(强權)을 신뢰하고 영구한 복종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매우 불쾌하니, 이러한 연극은 속히 상연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힐책하였다.
1932년 12월 1일 예산경찰서(禮山警察署)에서는 이광섭·윤수덕·이강오의 가택을 수색하고 서류를 압수해갔으며, 이를 이른바 ‘만경좌 사건’으로 칭하며 다수를 검거하였다. 취조를 마친 후 서용하를 비롯한 8~9명은 홍성검사국(洪城檢事局)으로 송치되었다가 12월 26일 모두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예산경찰서 측에서는 이들을 다시 검속하여 홍성경찰서에 유치시켰으며, 서용하와 강찬희는 예산경찰서로 이송하였다. 이들 가운데 이강오 등 4명은 1933년 2월에 풀려났으나, 서용하를 비롯해 강봉주·강찬희·김현창 등은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2월 17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공주형무소(公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4월 15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12. 5, 1933. 2. 14)
- 중앙일보(中央日報)(1933. 1. 5, 2. 8, 2. 28, 4. 29)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33.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