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청도(淸道) 사람이다.
1919년 경북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동한 인사의 가족을 돌보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았다.
각지의 만세시위운동에 고무된 김상구(金相久), 김종태(金鍾台), 김진효(金鎭孝) 등 운문면 신원동(新院洞)의 청년, 유지들은 3월 18일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운문면 사무소로 가서 2척 길이의 명주수건에 대(大)자 한자를 쓴 후 면서기 4명에게 차례로 ‘한’ ‘독’ ‘립’ ‘만’ 자를 쓰도록 하고 ‘세’자를 기입하여 독립기를 완성한 후 면사무소를 나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수많은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방음동(芳音洞)으로 진출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다시 오진동에 이르러 이곳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밤에는 이용환(李龍煥), 김문근(金文根) 등의 열혈 청년들의 주도로 공암동(孔岩洞)의 강정에서 다시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이튿날 19일 오후 6시경 일경들은 신원동 시위의 주동인물 중 한사람인 김상구를 연행하려 하였으나 김상구가 부재 중이자 그의 어머니를 이웃 문명학교로 인치하려 하였다.
이를 목격한 김병준(金秉濬), 김의택(金義澤) 등은 의분을 참지 못하여 ‘동리에 사람이 없느냐. 대한인이 모두 만세를 부르는데 무엇이 나쁘다는 말이냐’고 항의하였다. 이에 곧 김병형을 비롯한 40여명의 동민들이 달려와 5명의 일경을 포위하고 곤봉세례를 가하였다. 또한 나팔소리를 신호로 전동민 3백여 명이 모여 들었다. 이러한 기세에 놀란 일경들은 권총을 발사하며 도주하였다.
김병형은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2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20. 2. 7. 大邱地方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4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