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1920년 평북(平北) 벽동(碧潼)에서 청년단원(靑年團員)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동(同) 청년단은 3.1운동 이후 서간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담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19년 11월에 조직되었으며, 안병찬(安秉贊), 김승만(金承萬) 등이 주도한 이 단체는 본부를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두었으며, 조직은 크게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나뉘었는데 만주와 국내에 있는 80개의 청년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강계청년단(江界靑年團), 위원청년단(渭原靑年團), 벽동청년단 등이 속해 있었다.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와 일제와 민족반역자의 처단, 임시정부 교통기관의 후원, 만주지역과 국내에 있는 독립운동단체의 연계 강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0년 5월에는 백용서(白龍瑞) 등의 단원들이 벽동군 오북면(吾北面) 상동(上洞)에서 이 지역의 유지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공영팔은 벽동청년단원으로 동지(同志) 십수명과 함께 벽동군 헌병대(憲兵隊)에 체포된 후 탈출을 기도하다가 일제 경찰과의 격투 과정에서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신문(1920. 5. 15, 1921.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