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강원도 영월(寧越) 사람이다. 1907년 신태식(申泰植) 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당시의 의병봉기는 같은 해 8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신태식 의병장은 1907년 8월 충북 단양(丹陽)에서 수백명의 군사를 모아 거의하여 충북 제천, 경북 울진ㆍ평해ㆍ영양, 강원도 원주ㆍ홍천 등지를 넘나들며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이어 이강년(李康秊)의진과 합진하여 소모후군장(召募後軍將)의 직임을 맡아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김성도는 이와 같은 신태식의진의 포군(砲軍)으로 항일전투에 앞장섰다. 그러나 1908년 평북 강계에서 군사를 소모하던 중 일군의 습격을 받고 2~3일에 걸친 접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그의 순국 소식을 들은 신태식 의병장은 다음과 같이 애통한 마음을 글로 남겨 후세에 전하기도 하였다. 선봉이 내고(來告)하되 포군 일명 피살이라 올라가 수렴하니 영월있는 김성도라 산상(山上)에 갖다놓고 붙들고 통곡할제 불쌍하고 참혹하다 이를 어찌 하잔말가 불원천리 날 쫒아와 객지고혼 되단말가 너의 부모 너 보낼 제 전체(全體)를 훌여잡고 누대로 상한(常漢)되어 나라 일이 무엇이뇨 육남매를 다 죽이고 너 하나를 만득(晩得)하여 감고(甘苦)를 같이하고 잠시 이측(離側) 맞았더니 국가이 불행하여 이 지경이 되난구나 복중(腹中)에 갖인 자식 의탁할 곳 전혀없다 울음 울고 사실(辭實)소리 내 귀에 젖어있다 회군 길에 영월 들어 무엇이라 대답하노.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末義兵資料集(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1∼14·417·41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