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황해도 평산(平山)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여 갔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당시의 의병전쟁은 처음에는 전기의병과 같은 대회전(大會戰) 방식이었으나 1906년 말부터는 소부대에 의한 유격전 방식으로 변해 갔다. 때문에 의병의 거점도 향교 같은 곳이 아니라 읍성(邑城)이나 산성이었고 나중에 유격전으로 변해가면서는 산악으로 옮겨갔다.
이와 같이 국망의 사태가 도래하자 김경칠은 1910년 김정안(金貞安) 의진에 참가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정안은 한정만(韓貞萬)·최순거(崔順巨) 등과 함께 이진룡(李鎭龍)의병장의 부장으로, 황해도 해주와 평산, 곡산 일대에서 500여 명의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1911년 이진룡이 만주로 망명한 이후에는 독자적인 부대를 이끌고 있었다.
김경칠은 이러한 김정안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1911년 종두 면허원 등 일본군 밀정을 총살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13년 4월 김경칠은 김정안과 함께 황해도 서흥군에서 군자금 모집 중 일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상을 입고 은신하였다.
그는 몸이 회복된 후 1914년에 다시 김정안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 토벌대와 교전 끝에 총상을 입고 은신하던 중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5년 9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살인강도 및 방화로 사형을 받아 11월 3일 형집행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總督府官報(1915. 11. 11)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211·21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