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08년 음 9월부터 1912년 12월까지 전북 진안·장수·임실 등지에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참여하여 일본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사형(死刑) 순국(殉國)하였다.
1908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된 임실 출신의 유생 이석용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었다. 이석용은 1908년 9월 성재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였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패하여 의병진을 해산하고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었다.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되어 순국(殉國)하였다.
김필수는 이석용부대의 일원으로 1908년 음력 9월 6일 여운서(呂云西)와 함께 일본 헌병의 밀정 김관일(金寬日)을 처단하였고, 1911년 4월 14일 이석용 외 4명과 함께 김제군 일서면(一西面)의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이돈일(李敦逸)로부터 징수한 세금 64원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1912년 2월 2일 송판구(宋判九)·조영국(趙永國)·김순보(金順甫) 외 5명과 함께 장수군 수서면 매암리 이상일(李相一)로부터 군자금 28원을 모금하였으며, 같은 날 장수군 진전면 호병동 최은상(崔殷相)으로부터 군자금 13원 30전과 백목면 3필을 모집하였다.
김필수는 이석용 등과 함께 1912년 11월 22일 밤 장수군 진전면사무소를 기습하여 공전영수원·면서기·전면장 등으로부터 세금 33원 72전, 면비 50원 44전, 개인 돈 28원 82전, 휴대용 금고 2개를 모집하였다. 김필수는 또한 이석용 등과 함께 1912년 12월 17일 임실군 남면 야당리의 공전영수원 강정수(姜正秀)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김필수는 1913년 3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5월 26일 대구감옥에서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李錫庸 判決文(大邱控訴院:1909. 3. 6)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部:1913. 2. 22)
- 李錫庸 判決文(高等法院刑事部:1909. 4. 16)
- 朝鮮總督府官報(朝鮮總督府:191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