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순천(順天) 사람이다.
1945년 학병으로 미얀마 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미군 첩보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군포로수용소 시절「자유한인보(自由韓人報)」를 발간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박순동은 1945년 3월 학병으로 미얀마 쿰(Kume)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4월 경 동료 이종실(李鍾實) 등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하여 당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에 투항하였다. 이들은 대일항전을 자청하였고, 이에 따라 인도내에 있던 미군 OSS에 넘겨지게 되었다.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그는 같은 해 5월 OSS의 특수공작인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참여하였다. 냅코작전은 '한국내에 당장 침투하여 첩보, 지하조직 조성 등의 활동을 하고 사보타지와 무저항운동으로 이어갈 것'을 목적으로 한 미군의 국내 침투작전으로, 이를 통해 2,300만 한국 국민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을 전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특수훈련이 끝나면 각각 5∼10명의 공작조로 나뉘어 서울, 평양, 평남의 농촌지역 등 국내 각지에 침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5월 이들은 OSS의 첩보요원훈련(諜報要員訓練)을 받기 위해 미서부 산타카타리나 섬으로 이동하였다. 같은 해 6월부터 OSS의 냅코작전을 위한 첩보활동, 태업선동, 무선연락 등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으나, 태평양전쟁의 종전으로 말미암아 참전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自由韓人報 第3號(1945. 11. 15)
- 新東亞(1965. 9月號) 350∼383面
- 自由韓人報 第7號(1945. 12. 12)
- 미국 O.S.S 문서(에이플러 대령이 해군정보국 부국장 그레고리 대령에게 보낸 보고서, 1945.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