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12월 민용호 (閔龍鎬) 의병장 (義兵將) 의 초빙을 받고 관동창의진 (關東倡義陣) 에 입진 (入陣) 하여 군사 (軍師) 의 직책을 맡아 강원도 (江原道) 강릉 (江陵) 을 활동근거지로 삼을 것과 원산 (元山) 을 공략한 후 양서 (兩西) 지역(평안 (平安) , 함경도 (咸鏡道) )의 군사를 모아 청국 (淸國) 과의 연합작전을 전개할 것을 헌책 (獻策) 하는 등 군사전략을 주도하다가 1896. 2월 원산 (元山) 으로 진격하던 중 함남 (咸南) 안변 (安邊) 의 선평전투 (仙坪戰鬪) 에서 전사 순국 (戰死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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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진(義陣) : 의병의 군진. 의병 부대를 배치한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도 평창(平昌) 사람이다.
민용호(閔龍鎬)의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에 참여하여 강원·함경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박동의는 일제가 1894년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후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침략정책 수행을 노골화하자, 국권침탈의 위기를 절감하던 차에 마침 1896년 1월 민용호가 방문하자 관동창의진에 참여하여 군사(軍師)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관동창의진의 군사로서 전략수립에 큰 역할을 하며 지장(智將)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의진의 활동근거지를 강원도 강릉(江陵)으로 삼을 것, 원산(元山)을 점령하고 양서지역으로 진출하여 그곳의 병사를 모을 것, 청(淸)과 연합작전을 펼칠 것 등의 전략을 수립하면서 의진의 투쟁방략 및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관동의진은 근거지를 강릉으로 옮기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의진의 최고활동 목표를 원산공략으로 설정하였다. 특히 1896년 2월 6일 안변(安邊)의 선평전투(仙坪戰鬪)에서 원산(元山)으로 북진 중이던 일본군을 맞아 교전을 펼쳐 130여 명을 부상하게 하고 일본군 장교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불행히도 이 전투에서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舊韓末 西北 邊境地域의 義兵硏究(朴敏泳,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5) 111·112·118· 119·123面
- 關東倡義錄(國史編纂委員會) 9·10·25·27·28·36·37·103·224·29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