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 1월 민용호 (閔龍鎬) 가 관동창의진 (關東倡義陣) 을 결성하자 이정재 (李正宰) 와 함께 130여 명의 군사를 모아 입진 (入陣) 하여 총독장 (摠督將) 에 임명된 후 동년 (同年) 2월 함남 (咸南) 원산 (元山) 공략을 목적으로 북진 (北進) 하던 중 안변 (安邊) 의 선평전투 (仙坪戰鬪) 에서 적군 (敵軍) 과 교전 (交戰) 하여 적장 (敵將) 2명 (名) 을 포살 (砲殺) 하고 3월에는 후군장 (後軍將) 으로서 묵호 (墨湖) 에서 왜선 (倭船) 3척 (隻) 을 격침시키는 등 전공 (戰功) 을 세우며 의진 (義陣) 의 핵심인사로 활동하다가 동년 (同年) 8월 함흥성 (咸興城) 에 주둔 중 적군 (敵軍) 의 습격을 받아 피체 (被逮) 되어 피살 (被殺)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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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강원도 회양(淮陽) 사람이다 .
민용호(閔龍鎬)의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에 참여하여 강원·함경도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신무섭은 민용호의 관동창의진이 1896년 1월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통천(通川)을 거쳐 회양(淮陽)에 이르자 이정재(李正宰) 등과 함께 군사 130여 명을 모아 의진에 참여하여 총독장(總督將)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896년 2월 6∼7일 안변(安邊)의 선평전투(仙坪戰鬪)에서 원산(元山)으로 북진 중이던 적군을 맞아 130여 명을 부상시키고, 일본군 장교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또한 동년 3월 8일에는 후군장(後軍將)직을 맡아 강우서(姜禹瑞)·민동식(閔東植)·전치운(全致雲) 등과 함께 의진을 이끌고 묵호(墨湖)에 나타난 일본군 선박 3척을 격침시켰고, 동년 4월에는 성익현(成益賢)·박봉구(朴鳳九)·민동식 등과 인제(麟蹄)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큰 전공을 세우고 관동창의진의 핵심인물로 활약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1896년 8월 10일(양력 9월 16일) 함흥(咸興)에 주둔하던 중 적군의 습격으로 18명의 의병들과 함께 붙잡혀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896. 10. 15)
- 關東倡義錄(國史編纂委員會) 27·28·36·76·77·224·299面
- 舊韓末 西北 邊境地域의 義兵硏究(朴敏泳, 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 140·14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