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13년 충북 (忠北) 영동군 (永同郡) 영동면장 (永同面長) 등으로 재직하다가 독립운동 (獨立運動) 에 뜻을 두고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한 후 중국 (中國) 봉천성 (奉天省) 유하현 (柳河縣) 삼원포 (三源浦) 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이 결성되자 이에 참여,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중앙총단 (中央總團) 의 서기장 (書記長) 및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의 지단장 (支團長) 에 선임되어 조맹선 (趙孟善) , 박장호 (朴長浩) 의 핵심참모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던 중 1920. 7. 23 봉천성 (奉天省) 환인현 (桓仁縣) 소양차 (小陽岔) 부근에서 일군 (日軍) 수사대 (搜査隊) 의 습격을 받고 교전 (交戰) 끝에 전사 (戰死)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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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만주 서간도지역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지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09년 3월부터 1913년 3월까지 충북 영동군 영동면장 겸 영동군 12개면 협의소장(協議所長) 또는 금융조합장 등에 재직하다가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1913년 12월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한 후 중국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로 망명하였다.
1919년 대한독립단이 결성되자 이에 참여하여 대한독립단 중앙총단(中央總團)의 서기장 및 대한독립단의 지단장(支團長)에 선임되어 박장호·조맹선(趙孟善) 등의 핵심참모로 중추적인 활동을 수행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조맹선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에서 결성된 무장 독립운동단체였다.
이승구는 1919년 10월경 관전현(寬甸縣)에서 중국관헌에게 체포되었으나 방면되었다. 그후 계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20년 7월 23일 봉천성 환인현(桓仁縣) 소양차(小陽 ) 동북방 400m 거리의 산중에서 일본군 수사대의 습격를 받고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8卷 52·5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