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염윤원은 1908년경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함남 단천에서 군사들을 규합하여 거의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과 수차례의 전투에서 승전하며 활동하던 중 부친을 뵙기 위해 고향 집에 들렀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옥문을 부수고 맨손으로 일병을 격살한 후 옥중의 의병들을 구출하고 일진회원인 친일 군수를 응징하다가 다시 붙잡혀 이튿날 바로 총살 순국하였다.
순국 정경을 기록한 당시 신문의 다음과 같은 기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그 이튿날 포살(砲殺)을 당할 새, 염공(廉公)이 천연히 정색하며 하늘을 불러 왈 황천은 우리 나라를 도우시사 일본 같은 적국을 멸망하고 대한을 회복하시기를 축수하나이다 하며 또 일병을 호령하여 오늘 너희가 오늘날 나의 육신은 죽이나 나의 철석같은 정신은 못 죽일 것이요, 너희가 나의 한 몸은 죽이나 우리 일심으로 단결된 동포는 다 죽이지 못할지니 그러하면 너희 종자는 남지 않으리라 하며,(중략) 오호라 슬프다. 염공의 의기는 더 말할 것 없거니와 일층 더 탄복할 일은 그날 옥벽을 헐고 일병을 타살하였으니 어찌 후환이 있을 줄 모르리오마는 목숨을 도망치 않고 다시 옥중에 들어가 동포를 구제하다가 사로잡힌 바 되었으니 그 근경을 생각하면 사람마다 기필(期必)하기 어려우며(하략)”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海朝新聞(1908. 3. 21,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