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0079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金德三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6 훈격 애국장
1908년 박래익 의병진(朴來翊義兵陣)에 가담하여 강원(江原) 정선(旌善), 평창(平昌) 등지에서 평창수비대(平昌守備隊)교전하던중 체포되어 피살(被殺)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일제는 1904년 한국 침략의 경쟁국인 러시아 군대를 기습공격하여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여 한국을 그들의 전쟁기지로 삼았다. 그런 다음 같은 해 8월에는 한일협약으로 고문정치를 강요하였다. 이어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대한제국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평민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전사자가 10만 명으로 알려질 정도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들의 항쟁은 처절한 것이었다. 김덕삼은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1908년 강원 정선(旌善), 평창(平昌) 등지에서 활동한 박내익(朴來翊)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4월 의병 활동의 정보를 입수하고 출동한 정선군 수비대에게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9輯 603·604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덕삼 - 강원 평창(平昌) -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김덕삼(관리번호:950079)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