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황해도 해주(海州) 군수(郡守)를 지낸 바 있다.
일제는 1904년 한국 침략의 경쟁국인 러시아 군대를 기습공격하여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정부에는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여 한국을 그들의 전쟁기지로 활용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는 한일협약으로 재정과 외교 등에 고문정치를 강요하였다.
이어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대한제국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새로이 많은 인사들이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정인국은 1905년 황해도에서 기의(起義)하여 의군본부(義軍本部) 참모장(參謀長)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3월 나인영(羅寅永), 오기호(吳基鎬) 등이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고 을사5적 암살 계획을 추진할 때 이용태 등 궁정 정부인사들과 함께 3,40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다 붙잡혀 유형(流刑) 7년을 받았다.
1910년 3월 재차 거의(擧義)하여 황해도 평산군(平山郡)의 이진룡(李鎭龍)의병장과 합세하였으며 80여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황해 평산, 금천군 등지에서 의병간의 연합을 주선하는 모임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기밀을 입수한 평산군 온정면 및 금천 헌병분견소 헌병대가 출동하자 모임을 해산하고 부하를 도피시킨 그는 도저히 달아날 수 없음을 깨닫고 소도(小刀)로써 인후(咽喉)를 찔러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 헌병대와 격투 중 전사 순국함으로써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417·53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1輯 541∼544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60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8輯 87·88·220·221·223∼225·227面
- 梅泉野錄(黃玹) 418·52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7卷 15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