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1년 소위 사내총독 암살음모사건(寺內總督 暗殺陰謀事件)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이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는 서북지역 독립운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내총독 암살음모사건을 조작하여 서북지역의 인사들을 대거 체포하였다. 그 과정에서 옥관빈과 친분이 있었던 황공호도 일제의 마수에 걸려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후 그는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방도를 모색하는 한편 국내의 인사들과 연결되어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선전물을 국내에 발송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는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 참가했다. 임시의정원의 중국지역 대표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의정원의 세칙 개정과 위원 선출, 임시정부가 제출한 국채통칙(國債通則) 및 국채발행조례(國債發行條例) 등을 결의하며 활발하게 의정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그는 임시정부 재무부 소속의 재금수합위원(財金收合委員)으로도 활동하였으나 병을 얻어 1919년 9월 11일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262面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編)(國會圖書館) 38·42·54面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25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87面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6·16·23面
- 民族獨立鬪爭史史料(海外編)(民族運動硏究所) 15·28面
- 遞秘 第1681號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39面
- 獨立新聞(1920.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