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강계(江界)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평북 강계군 강계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강계 만세시위의 계획은 기독교와 천도교측 인사들이 함께 연대하여 추진되었다. 같은 해 3월 24일 영실중학교에서 이들 인사들은 어떠한 희생도 각오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연판장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거사일을 4월 8일 오전 11시로 정하고, 읍내 남장대(南將臺)교회의 종소리에 맞춰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거사를 위해 영실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제작하였으며, 서면교회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거사준비를 차질없이 진행시켜 나갔다. 거사 당일인 4월 8일 오전 11시, 남장대교회의 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계획대로 영실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가 진행되었다. 시위대는 대형 태극기 2개를 앞세우고, 북과 나팔소리에 맞추어 시위행진을 벌였는데, 이때 김병찬은 시위 대열에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대가 헌병분견소를 지나 북문(北門)을 향하던 도중 이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기마헌병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탄압하였으나, 시위군중에 압도되자 그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던 그는 일군경이 발사한 총탄에 의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6卷 479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11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485面
- 朴殷植全書 上卷 572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60·500面
- 獨立新聞(1920.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