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남 원산(元山) 사람이다.
만주와 노령에서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일찍이 만주에서 와룡농장학원을 경영하였으며, 노령에서 학교 교사로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신정권이 수립되자 전로한족회(全露韓族會) 중앙총회(中央總會)는 러시아의 새로운 정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니콜리스크에서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였다. 주요 구성원으로는 문창범(文昌範, 회장), 김주프노코(부회장), 김립(金立, 부회장) 등이었다. 그는 「청구신보(靑丘新報)」가「한족공보(韓族公報)」로 개칭되자, 박은식(朴殷植)·조완구(趙琓九) 등과 함께 이 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파견을 위한 희사금 모집을 서두르던 때, 남공선의 명의로 서신을 간도에 있는 박경철·이성근 등에 보내어 대표선출을 요청하였다. 같은 해 6월 15일에는 김일(金一) 등과 함께 북간도에 가서 장기영(張基永)·구춘선(具春先) 등과 회합하고, 북간도지방의 한족독립운동 의사부 및 신문발행기관을 나자구(羅子溝)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1920년 1월 상순 상해 미국조계에서 한국독립운동자 각 단체의 대표가 모인 가운데 중한노공동맹연합회(中韓勞工同盟聯合會) 가 개최되자 러시아 지역 기독교 대표로 참여하였다. 이 연합회는 재상해 미국인들의 도움을 얻어 항일운동을 전개함과 아울러 사회주의 사상을 동방에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20년 9월 북경에서 박용만(朴容萬)·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군사통일 촉성회를 조직하였다. 1921년 4월 20일에 북경에서 군사통일주비회(軍事統一籌備會)가 개최되자 시베리아 대한국민의회 대표로서 참석활동하였다. 아울러 1921년 4월 19일에는 이승만의 위임통치안에 반대하는 서명을 53명의 동지들과 함께 하였다.
1923년 6월 상해에서 개최하려던 국민대회가 결렬되자 임시정부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이 조직된 국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139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905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772面
- 民族獨立鬪爭史史料(海外篇) 97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6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751·777面
- 先鋒(1924. 12. 15)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國會圖書館) 291·316·355·357·51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178·180·51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