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1937년 3월 경성공립중학교(鏡城公立中學校)를 졸업한 뒤 도일(渡日)하여 동경(東京)의 예비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학습을 한 뒤, 1939년 4월 일본의 부산고등학교(富山高等學校) 고등과 문과에 입학하였다. 부산고 재학시, 창씨개명 및 한글의 폐지, 한글 신문의 폐간 등 일제의 정책이 소위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하에 한민족을 핍박하고 한국 고유의 문화와 민족성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랄 한국민족의 참된 행복은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추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당면 과제로서 재일 한국인 학생들의 선각자로서의 사명 자각, 학생간 일치단결하여 민족의식 앙양 도모, 한국 민중의 지도·계몽을 통해 문화수준 향상, 한국 독립의 소지를 배양할 목적으로 민족주의그룹을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1940년 4월 하순, 부산시내(富山市內) 음식점에서 개최된 그룹의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한 그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장래 조국에 돌아가 민중을 지도·계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으며, 11월 하순경에는 시험면려회(試驗勉勵會)를 개최하여 회의(會議)시 한국어 사용과 한국문화 사수를 설파하였고, 1941년 1월 하순에는 졸업생 송별회에 참석하여 일제의 한글 사용 금지와 한글신문 폐간정책을 비난하고 민족정신 앙양에 노력할 것과 한국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침으로써 민족정신을 유지시킬 것을 역설하였다.
또한 1941년 3월에는 부산고교 후배들에게 조국 독립에 대비하여 민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소지를 배양할 것을 격려하였으며, 4월 하순경에는 신입생 환영회를 개최하여 동년 부산고에 한국인 입학생이 없는 것은 학교 당국의 한국인 배척방침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후세교육을 통해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을 계승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 후 9월 중순경 조옥래(趙玉來) 등과 함께 독립 후 국가건설론에 대해 토론하는 한편,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인 학생의 결속을 강화하고 민족정신을 앙양하여 민족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약하였으며, 11월에는 졸업생 송별회를 개최하여 일본의 국체(國體)를 변혁시키고 한국의 독립실행방략을 협의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1년 12월 12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1942년 12월 8일 부산지방재판소(富山地方裁判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1943년 10월 5일 관부연락선(關釜聯絡船) 곤륜환(崑崙丸)으로 귀국 중 배가 침몰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마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7권 264∼266면
- 구제 부산고등학교 사상문화운동사(동편찬위원회, 1983) 239·372면
- 치성(경성고보 창립 70주년 기념지) 309∼313면
- 일본의 한국침략사료총서(한국출판문화원) 32권 394면
- 경성군지 18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3집 334∼340·7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