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3년 평양숭실중학을 졸업하고,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만주로 건너갔다. 유하현 대황구(大荒溝)에서 이상룡(李相龍)이 조직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입하였으며, 1920년 1월 의용군 경리원 겸 소모원에 임명되어 국내에 특파되었다.
그는 평양에서 비밀결사 모험단(冒險團)을 조직하고 평남도청, 평양부청, 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이근수(李根洙)·강성리(康聖利 : 康鉉)·백기환(白基煥) 등과 함께 거사준비를 끝냈다.
그러나 거사 전일인 동년 5월 9일 새벽에 일경의 습격을 받고 체포되었다. 평양서에서 취조를 받던 중 2층에서 격투 끝에 뛰어내려 시가지로 피신하였으나, 수백명이 동원된 포위망 속에서 결국 하수도 안에서 다시 잡히고 말았다. 당시의 신문에서는 '상해 임시정부 특파원 정비장(鄭飛將)체포'라고 대서특필로 보도하였다.
그는 1921년 1월 29일을 기하여 옥중에서 3·1절기념 독립만세를 고창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동지 이근수와 이학근(李學根)은 매맞아 옥사하였고, 그는 무수한 악형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부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20·4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16·718·719·721∼725면
- 매일신보(1920. 5. 19, 7. 4)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2·305·306·30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