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3·1운동 직후 평남 일대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성천지회(成川支會) 회원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평양(平壤)의 교회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임시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결성한 대한국민회는 평양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처에 지부를 설치하면서 3·1운동 이후 국내 최대 규모로 발전한 독립운동단체다.
대한국민회 성천지회는 만약 외세에 의존하여 독립이 실현된다고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외세의 지배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자력에 의한 독립 달성만이 진정한 방도라는데 뜻을 모았다. 대한국민회 성천지회는 1919년 10월 31일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기관지『대한민보』를 발행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20년 초 대부분의 조직이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1919년 가을 이성윤(李成允)·이춘삼(李春三)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성천지회(成川支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을 통한 상해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7월경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고 1년 8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平南民報(1996. 6. 1)
- 東亞日報(1920. 6. 24·7. 8)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