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6년 10월 김병모는 김순조・장준두・최신을(崔信乙) 등과 함께 안동현 집에서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한복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의병장이자 의군부(義軍府)에서 활동했던 전덕원(全德元)의 지휘하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12월 25일 김순조・장준두와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의주군 광성면(光城面)에서 군자금 10원을 모집하였다. 이어 중국으로 돌아와 1927년 1월 29일 김순조・장준두와 함께 중국 삼도랑두(三道浪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2월 14일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중국 안동현에서 체포되었다. 1927년 10월 5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과 ‘가택침입’, ‘강도’를 이유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공소하였다. 그러나 1927년 12월 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31년 1월 16일 신의주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중국 안동현 6도구 3조통(條通)으로 돌아왔다. 1932년 12월 말 신의주형무소에서 알게 된 한신옥(韓信玉)에게 1929년 9월 중국 길림성(吉林省)에서 한국 독립을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인 조선혁명당 당원 서복손을 소개하였다. 이때 한신옥은 조선혁명당에 가입하고,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고이허(高而虛)로부터 권총을 받아 군자금 모집 계획을 수립하였다.
1933년 1월 초순 한신옥이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려 하자, 그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는 한편 군자금 모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에 평안북도 선천군 남시(南市)에서 군자금 1,600여 원을 모집하고 돌아온 서복손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다.
1937년 6월 19일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1938년 3월 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과 ‘강도 방조(强盜幇助)’를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41년 3월 5일 신의주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가출옥관계서류(假出獄關係書類)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사상휘보(思想彙報) 제1호 90~98면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2. 17, 26, 3. 14)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10. 2, 9)
- 조선일보(朝鮮日報)(1927. 11. 2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편찬위원회, 1977) 제14집 9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