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8년 3월 공영사(共榮社)는 함경남도 영흥군 함흥본궁 준원전(濬源殿) 경내의 나무를 벌채하여 운반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때 서준재는 영흥노동조합 순녕지부 집행위원 위원으로 우차조합을 결성하고 회사와 임금 협상 등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활동했다. 운반을 청부한 일본인 책임자가 조합과 체결한 교섭 조건을 뒤집자, 조합원들과 함께 운반 업무를 방해하며 교섭 조건 준수를 요구했다. 이에 순녕주재소에서 파견된 일제 경찰에 의해 4월 26일 조합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8년 12월 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및 상해・업무방해’를 이유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9년 6월 27일 출옥하였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32년 7월 정태술(鄭泰術)․성달덕(成達德) 등과 함께 도야마현에서 일본전국노동조합전국협의회에 가입했다.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도야마 토목건축노동조합(富山土木建築勞動組合)을 재건하기 위해 그해 8월 개최된 호쿠리쿠지부준비회(北陸支部準備會)에 도야마지구 준대표(準代表)로 참석했다. 1933년 1월 28일 성달덕 등과 함께 도야마시 부근에 거주하는 한인 180여 명과 함께 시청에서 실업구제책을 요구하고, 같은 해 4월 ‘실업자친목회’를 조직해 일본 내 한인의 권익향상을 위해 힘썼다. 1933년 5월 도야마시 도로개수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들이 ‘메이데이’의 휴일에 임금을 요구한 것을 이유로 모두 해고되자, 128명의 한인 노동자들과 함께 시내를 행진하며 ‘해고, 임금 인하, 노동강화 절대 반대’ 등을 주장했다. 1934년 3월 니가타현(新瀉縣)의 희륙발전소(姬六發電所)로 건너가 5월 한인 노동자를 규합하여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 요구 등을 위한 토건 조직을 만들고자 힘썼다.
1934년 12월 14일 후쿠이현(福井縣)에서 1932년 7월 일본전국노동조합전국협의회 가입과 1934년 12월 일본전국노동조합전국협의회 호쿠리쿠지구협의회 재건투쟁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37년 4월 5일 후쿠이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후쿠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8년 9월 1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5. 13, 1929. 1. 18, 2. 27, 1933. 5. 5)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12. 18, 29, 1933. 5. 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 18, 2. 16, 1933. 5. 5)
-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498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5) 제2(1)권, 470~471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2(2)권, 855~856면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6) 제3(1)권, 187~188, 236~237, 510, 512, 521면
- 소화특고탄압사(明石博隆․松浦總三, 1976) 6권 81, 84면
- 전전조선인관계경찰자료집(綠蔭書房, 2006) 1권 78, 174면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부, 2019) 일본편 13 299, 3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