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양주군에서는 1919년 3월 13일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3월 말까지 군내 전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29일 진접면 부평리(富坪里) 봉선사(奉先寺)의 승려 김성암(金星岩)이 서울의 독립선언 소식을 전하며 이순재(李淳載)・김석로(金錫魯)・강완수(姜完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봉선사 서기실에서 주민들의 독립만세시위 동참을 촉구하고자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 명의로 유인물 200매를 인쇄하였다.
부평리의 이재일(李載日)은 자신의 집에서 ‘조선 독립을 위하여 시위운동을 일으키고 독립만세를 부르라’는 취지의 격문 1통을 받았다. 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회람시키자 만세시위에 찬동하여 호응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3월 31일 이재일・김순만(金順萬) 등이 주동이 되어 광릉천(光陵川) 모래밭에서 최대봉(崔大奉)・박돌몽(朴乭夢) 등 1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부평리에 거주하던 원인성은 진접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2일 경성헌병분대(京城憲兵分隊)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6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9. 5. 2)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범죄사건통지서(犯罪事件通知書)(경성헌병분대장 : 1919. 7. 1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