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양주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를 시작으로 3월 말까지 군내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진접면에서는 3월 14일 장현리(長峴里) 주민 70여 명이 만세시위를 펼치자 출동한 장현리 헌병주재소의 헌병에 의해 시위대가 해산되고 12명이 체포되었다.
3월 29일 서울의 독립선언 소식을 전한 부평리(富坪里) 봉선사(奉先寺)의 승려 김성암(金星岩)이 이순재(李淳載)・김석로(金錫魯)・강완수(姜完洙)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 명의로 격문 200부를 봉선사 서기실에서 인쇄하고, 인근 4개 마을에 배포하였다.
3월 29일 밤 부평리의 이재일(李載日)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시위운동을 일으키고 독립만세를 부르라’는 격문을 전달받았다. 이를 마을 사람들과 회람하고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3월 31일 광릉천(光陵川) 모래밭에 모인 100여 명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부평리에 거주하던 원창달은 진접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2일 경성헌병분대(京城憲兵分隊)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6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범죄사건통지서(犯罪事件通知書)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301~302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