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양주군 진접면 만세운동은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3월 14일 장현리(長峴里)에서 약 70명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장현리헌병주재소 헌병들에 의해 해산되고 12명이 체포되었다. 3월 29일 부평리 봉선사(奉先寺) 서기실에서 이순재(李淳載)・김석로(金錫魯)・김성암(金星岩)이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 명의로 항일 전단을 등사판으로 약 200매를 인쇄했다. 강완수(姜完洙) 등이 이를 밤 9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경까지 부평리 등 면내 4개 마을에 전달하였다.
같은 날 이재일(李載日)은 ‘광릉천 강가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부르라’는 취지의 통문을 받았다. 곧바로 주민들에게 이를 알리고 전순만(全順萬)・최대봉(崔大奉)・박석몽(朴石夢) 등과 이틀 뒤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3월 31일 이재일 등은 광릉천 모래밭에 모인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헌병들이 출동했다. 이때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일 경성헌병분대(京城憲兵分隊)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6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9. 5. 2)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범죄사건통지서(犯罪事件通知書)(경성헌병분대장 : 1919. 7. 1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