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07년 군대 강제해산과 고종의 강제퇴위로 인해 후기 의병이 일어난 당시 문일석은 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경상북도(慶尙北道) 순흥군(順興郡)에 본진을 두고, 강원도(江原道)와 충청북도(忠淸北道) 일대에서 활약하던 김상한 의진에 투신해 좌익(左翼) 이춘삼, 도령장(都領長) 김성천으로 이어진 조직에서 의병투쟁을 했다.
1909년 음력 윤2월 13~14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동로면(東魯面) 벌천리(伐川里)와 산안리(山安里)에서 각각 1원 50전과 5원을 모금하고, 음력 3월 4일에는 충청북도 청풍군(淸風郡) 남면(南面) 원대리(院垈里)와 근남면(近南面) 지곡리(池谷里)에서 각각 18원 45전, 엽전 40냥과 필요 물품을 구하는 등 자금과 군수물자를 수급하는 활동을 했다.
4월 24일 단양군(丹陽郡) 조산면(造山面)에서 충주경찰서 청풍주재소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다. 이때 동지 4명은 사망하고 2명은 부상을 입었으며, 무기・탄환・화약・군자금 등을 빼앗겼다.
1909년 5월 15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12월 23일 사면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 : 1909. 5. 15)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篇冊)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5) 제14권 2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