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19년 연응렬(延應烈)과 함께 중국 길림성 왕청현으로 건너가 독립단에 가입했다. 양현(梁鉉)이 이끄는 부대에서 같은 해 10월까지 통신과 연락 임무를 맡아 활동했다.
1922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두도구(頭道溝)로 돌아가 김경천(金擎天)이 이끄는 수청의병대에 가입한 후, 통신사무 등을 맡아 활동했다.
1923년 1월 28일 혈성단 단원 출신으로 함께 활동한 서창무(徐昌武)로부터 군자금 모집 임무를 받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과 국내 관헌들의 동태 등을 파악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3월 17일 이러한 활동을 탐지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4월 18일 함흥지방법원 경흥지청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5년 9월 2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조선일보(朝鮮日報)(1923.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