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1929년 12월 함평공립농잠보습학교 학생들은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교장에게 휴교를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12일에 30여 명의 학생들이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전라남도 함평군에서도 이런 학생들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청년동맹원 소속인 황성규등과 소년단원들은 함평공립농잠보습학교 학생들과 연계하여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3월 1일을 기회로 시위를 단행하기 위하여 격문 다수를 등사판에 인쇄하였다. 1930년 3월 1일 정오경 함평면(咸平面) 함평리(咸平里)에 위치한 김계천(金桂千)의 집에서 함평경찰서원에 의해 김계천・김용환(金龍煥) 등과 함께 검거되었다. 등사판과 격문 수백 장이 압수되어, 시위운동을 계획한 것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1930년 4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금고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2. 28, 1930. 3. 4, 3. 28, 4. 21, 4. 24)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 3. 3, 3. 11, 3. 14)
- 중외일보(中外日報)(1930.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