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충청남도 예산군까지 확대되었다. 예산군 만세운동은 3월 말부터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31일 예산 장날에는 60여 명이, 4월 3일에는 3백여 명의 군중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4월 4일 밤 10시에는 예산군 내의 예산면(禮山面)·대술면(大述面)·오가면(吾可面)·신암면(新巖面) 등 약 15개 지역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오가면의 고성보는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했다. 그로 인하여 체포되어 1919년 4월 20일 예산헌병분대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30도를 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0)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45~1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