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예산군에서는 1919년 3월 3일 예산면 예산리 윤칠영(尹七榮) 등 5명이 동쪽 산 위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13일 대흥면(大興面) 동서리(東西里)에서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 300여 명이 대흥시장으로 나가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예산군의 본격적인 만세운동은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예산면・고덕면(古德面)・광시면(光時面)・대술면(大述面) 등지로 확대되어 만세시위와 봉화 시위로 전개되었다.
특히 4월 4일 만세시위는 예산 군내 15곳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밤 10시경부터 각 면의 주민들은 산에 올라 봉화를 피우고 만세를 외쳤다. 이순태는 오가면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0일 예산헌병분대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30대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10)
- 범죄인명부(犯罪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