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4월 3일 전라북도 남원군 덕과면(德果面) 만세운동과 4월 4일 남원읍(南原邑) 장날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1천 명의 시위대는 광한루 앞 광장에 모여 태극기를 앞세워 행진을 개시했고, 수천여 명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일제 헌병 분대의 사격으로 8명은 현장에서 순국했는데, 이때 검거되었다.
1926년 8월 남원군 사매리(巳梅里)에서 설립된 용북청년회 창립총회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 9월 12일 남원군 기매독서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우리의 살길은 농촌이냐 도시이냐」라는 연설의 연사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10월 용북청년지맹(龍北靑年支盟) 설립총회에 참여하여 서무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부터 1929년까지 신간회 남원지회에서 선전부 부원간사, 교육출판부 집행위원 등을 맡았다.
1931년 가을부터 남원군 이백면(二白面)에서 적색농민조합에 참여하여 북면 일대의 책임자를 맡았다. 이들은 소작료 감하운동 및 지세지주부담 등을 결의하고 농민교양과 동지규합에 노력했다. 1933년 6월 체포되어, 같은 해 11월 남원검사국에 송국되었다. 1934년 10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4. 10. 1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6. 8. 18, 1927. 9. 18, 10. 14, 1928. 1. 20, 1929. 2. 9, 2. 13, 1933. 12. 14, 1934. 8. 10)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12. 1, 1934. 10. 1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42면
- 남원항일운동사(운영근・최원식 편저, 1999) 511~5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