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2월 일본 (日本) 산구 (山口) 상업고등학교 재학 중 ‘내선일체’ (內鮮一體) , 조선어 폐지, 창씨개명 및 지원병제도 반대 등을 목적으로 려우회 (麗友會) 라는 민족주의적 항일운동 단체를 조직하고, 졸업식 송별회 및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신명 (身命) 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활동하다가 1939년 7월 10일 피체 되어 1940년 3월 12일 송국 (送局) (수형결과는 미상 (未詳) )되었으며 귀국 후 조선독립운동의 실행방법 등을 협의하다가 1944년 10월 22일 동대문경찰서에 인치된 사실이 확인 (確認)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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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39년 2월 일본 야마구치[山口]상업고등학교 재학 중 내선일체(內鮮一體) 반대, 조선어 폐지, 창씨개명 및 지원병제도 반대 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여우회(麗友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한국 민족이 처해 있는 생활 환경을 비판하고, 억압과 착취의 이중고로부터 해방은 조국 독립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하고, ① 여우회를 단순한 친목회에 초탈하여 민족주의 단체로 만들 것 ② 신입생에 대해 민족의식 계몽에 노력할 것 ③ 동지의 결집을 확대하고 강고히 할 것 ④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독립 쟁취를 확신시킬 것 ⑤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여 결국 패전할 것 ⑥ 해외 독립운동세력과 연계할 것 ⑦ 민족 지도자가 되기 위해 힘쓸 것 등을 투쟁 방침으로 정하였다.
그는 졸업식 송별회 및 신입생 환영회 등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신명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활동하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1939년 7월 10일 체포되어 1940년 3월 12일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귀국 후 독립운동의 실천적 방법 등을 모색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1944년 10월 22일 동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234·1235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3권 760·761면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松浦總三 編, 1976) 제7권 95·97·98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12권 645·646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