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김중일 (金重鎰) 등과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의하고 동년 (同年) 말 (末) 중경 (重慶) 임시정부 (臨時政府) 로 잠행하려다 중국 (中國) 산해관역 (山海關驛) 에서 발각되어 귀국하였고, 1944년 4월 최승우 (崔昇宇) 와 회합하여 징용 반대 (徵用反對) 격문 (檄文) 을 배포할 것을 계획하였고, 동년 (同年) 7월 일본인 고관 암살을 계획하다가 동년 (同年) 10월 체포 (逮捕) 되어 징역 4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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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정문규는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유한제약주식회사(柳漢製藥株式會社)에서 근무하던 중, 중앙대학 동창인 최승우(崔昇宇) 등에게 “임시정부에서 중견 간부로서 유식(有識) 조선 청년을 모집하고 있으니 중경으로 가자”며 중경 망명을 권유했다. 1943년 3월 이를 결행하여 중국 산해관까지 갔지만 일제 관헌의 단속으로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1944년 7월 정문규는 “조선 청년 다수가 징용당하면 조선 독립의 때에 능력있는 청년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징용을 반대하는 격문을 일본 군용열차 등에 배포하기로 계획하고, 일제 고관들을 암살하고 각종 공장을 폭파하기 위한 폭탄 제조 등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 사건으로 정문규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약품취급령 위반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루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45. 7. 2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