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경북 영덕군 영덕면 영덕읍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기독교회 목사 김세영(金世榮)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는 길에 서울에 들렀을 때, 3·1운동의 실상을 지켜본 후, 평양행을 단념하고 고향인 영덕군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추진되었다. 김세영은 영해면(寧海面)에 사는 구세군(救世軍)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을 찾아가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권태원·강우근(姜佑根) 등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으고, 3월 18일 영덕읍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였다.
이때 김용규는 강우근의 권유에 동조하고 함께 금호동교회의 교인들을 규합하였다. 이에 따라 화개동·금호동·남정면 남정동 등지의 기독교인 김암우(金岩佑)·김용하(金龍河)·김귀근(金貴根)·강대열(姜大烈)·이정규(李正奎) 등이 거사계획에 적극 찬동하였다. 그들은 거사일에 쓰일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다른 교인들에게도 거사일을 알려 참여토록 하였다.
거사일인 3월 18일, 교인 50여 명은 각자 태극기를 품에 품고 영덕읍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2시 30분 경, 장꾼들이 많이 모여들자, 강우근의 선창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장에 모여든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김용규는 선두에 서서 시위군중을 주도하여 시장을 행진하였다. 그러던 중 급히 출동한 일경들이 총칼을 휘두르며 시위군중을 위협하자, 군중들은 해산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5. 2. 大邱地方法院 盈德支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26∼43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