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1년 1월 경 독립지단 (獨立支團) 을 하던 김기한 (金起漢) 은 해주 정순경방 (鄭順敬方) 에 체재 (滯在) 하다. (동아일보 (東亞日報) 1921. 7. 3)
2. 1921년 8월 19일남만주 독립단 (南滿洲獨立團) 황해도지단 (黃海道支團) 설립사건으로 해 지법 (海地法) 에서 징역 1년 선고 (동아일보 1921. 8. 25)
3. 1920년변동환 (邊東煥) 의 소개로 독립단 가입하여 지단원 (支團員) 모집 가입
4. 황해도지단조직 (組織) 의 책임자, 상해임시정부발행 독립신문 (獨立新聞) 을 해주에 지참분배, 독립운동자금모집 (공적서 (功績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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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1년 8월 19일
3. 1920년
4. 황해도지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신문기자로 3·1독립운동을 취재 보도하는 한편 고향에 독립신문을 배포하기도 하였다.
1920년 1월 해주읍 출신으로 일찍이 의병에 참여하였다가 도만한 김기한(金起漢)을 만나, 변동식(邊東植)·최봉직(崔奉稷)·봉영화(奉永華)·김구영(金九榮)·변동환(邊東煥) 등과 함께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황해도 지단(支團)을 설립하였다.
그는 황해도 지단의 조직책임을 위임받고 단원 및 군자금 모집과 격문 배포 등의 활동을 하다가 동년 3월(음)에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의 여독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얼마 못 가서 별세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3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70·1074·1077·1082면
- 동아일보(1921. 7. 3, 7. 14, 8. 5, 8. 25, 9. 25,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