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강원도 삼척(三陟) 사람이다.
1928년 삼척청년동맹(三陟靑年同盟)에 가입한 그는 1930년 6월 동 단체의 삼화리(三和里) 지부 간부로 활동하면서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31년 4월부터 1년간 북삼면 함화리 소재 명화학원(明和學院)의 교사로 종사하면서 학생들의 계몽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1933년 9월 박래빈(朴來賓)·최춘희(崔春熙) 등과 함께 비밀결사 북삼농민조합조직위원회(北三農民組合組織委員會)를 결성하고, 여운리(麗雲里) 책임을 맡았다. 또한 1933년 10월 초순에는 최대희(崔大熙) 등과 함께 농민운동을 통한 민족 해방을 궁극적으로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여운농민조합(麗雲農民組合)을 결성하고 중앙부(中央部) 및 교양부(敎養部)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삼척의 농민조합운동은 심부윤(沈富潤)이 원산에서 활동하던 윤일균(尹一均)·김덕환(金德煥) 등과 연결되어 노동조합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할 목적으로 결성한 K회(會) 주동이 된 것이다. K회는 삼척지역 노동운동·농민운동·사상운동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그 역시 K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33년 11월 1일 그는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박래빈 등 3명과 함께 금광사무소(金鑛事務所)를 습격하여 금괴 283돈과 현금 63원을 탈취하였다.
그러던 중 농민조합이 발각됨에 따라 1934년 6월 일경에 붙잡힌 그는 1935년 10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5. 10. 31. 함흥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실직문화론총(삼척향토사문화연구회, 1989) 제1집 27·3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269면
- 삼척경찰서 중요범죄 보고(1935.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