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19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여 제2회 독립만세 시위계획에 참가하였다. 3·1운동직후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결성한 조선민족대동단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먼저 민족 대단결을 목표로 민족사회의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망라한 조직을 구상해 갔다. 조선민족대동단에서는 일제의 포위망이 압박되는 상황에서 근거지를 상해로 옮길 것을 계획하고, 의친왕(義親王)의 상해(上海) 망명을 도모하는 한편 1919년 11월 27일을 기해 3·1운동 때와 같은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민족대동단에서는 선언서와 만세시위에 필요한 격문을 인쇄하였는데, 전대진은 나창헌(羅昌憲)·안교일(安敎一)·정희종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사용할 격문의 배포를 맡아, 거사 전날인 11월 26일에 종로 일대의 민가에 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 만세시위를 위해 계획된 시위장소로 갔으나, 약속에 차질이 생겨 예정대로 만세시위를 벌이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친왕 상해 망명의 서전 발각과 더불어 그도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출판법·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12. 7. 경성지방법원)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1983) 553면
- 동아일보(1920. 6. 29)
- 조선일보(1920.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