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남 일원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7월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켜 우리 민족의 무력을 말살하는 등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시켜 갔다. 이에 분격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여 일본군을 축출하고, 친일주구배를 처단함으로써 무너져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을미의병 당시 노응규(盧應奎) 의진에서 활약하였던 유명국은 이같은 시기인 1908년 4월 다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경남 질산 부근에서 부하 약 400여 명을 인솔하고 의병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10여 개소에 배치된 일본군이 출동하여 그해 8월 30일 일본군 덕산(德山)수비대에 유명국 의병장 이하 의병 지도부가 붙잡혔다.
이후 그의 후군장(後軍將)인 장석견(張石見)은 4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의병활동을 하다가 해산하였고, 부하인 이만용(李萬用)이 다시 해산한 의병들을 모아 그해 10월에 이르기 까지 각지에 출몰하면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129·199면
- 폭도에 관한 편책(경상남도 경찰부, 1908)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3집 669·76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621·7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