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기독교 목회자로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반대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1915년 칠원보통학교 재학시절부터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때에서는 서울의 중동학교 재학 중 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퇴학을 당하였다.
이후 신학교(神學校)에 진학한 그는 신학교 졸업반 때인 1938년 기독교계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여 총회에서 신사참배가 가결되는 것을 목도하면서 신사참배 반대투쟁을 벌이기로 의지를 굳혀 갔다. 졸업 후 그는 전남 여수(麗水)의 나병환자 요양소인 애양원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강연이나 회의 석상에서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토로하고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는 내용을 연설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9월 25일 일경에 붙잡혀 1941년 11월 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한국교회인물 25인 약사(심군식) 73∼78면
- 한국기독교인물 100년(한영제편) 64·65면
- 한국기독교대사전(박용규편, 1978) 484∼488면
- 손양원목사설교집(안용준) 15·189·190면